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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하일 루트] 파트 10

졍님졍님 2019. 3. 12. 04:02

제르니움: 세상에-.

 

나는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억지로 다물었다.

 

제르니움: (아니, 성대할 걸 예상하긴 했지만...)

제르니움: (이 정도일 줄은.)

 

결혼식 당일, 완전히 변해버린 성의 모습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.

매일 달라지는 성의 모습에 마법의 위력을 실감하는 나날이었지만 완성품을 보고 있자니-

그동안의 변화는 어린애들 장난과 같았다.

 

하일: 마음에 드시나요?

제르니움: 네, 네에.

 

황금실로 수놓아진 커튼이나 휘황찬란한 은제 식기, 싱그럽게 피어난 꽃 장식.

무엇 하나 마음에 안 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.

 

제르니움: 정말 가능하네요.

하일: 뭐가요?

제르니움: 이주 안에 준비하는 거요.

하일: 하하하.

제르니움: 마법은 정말... 대단하네요.

하일: 음-

 

하일 씨는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.

 

하일: 앞으로 더 대단한 일들이 많아질 거예요.

 

평소보다 밝은 표정의 하일 씨를 보자 오늘이 진짜 그 날이라는 게 실감이 났다.

 

제르니움: 응.

 

나는 조심스럽게 하일 씨의 손을 잡았다.

 

하일: 얼른 보고 싶네요.

제르니움: 네?

하일: 제르니움님의 드레스 차림이요.

제르니움: 아...

하일: 예쁠 거예요, 분명히.

 

나는 대답 대신 하일 씨의 팔에 살짝 몸을 기댔다.

 

하일: 그런데 결혼식 예행 연습은 제대로 했나요?

제르니움: 앗...

 

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.

 

하일: 흐응...

 

하일 씨가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.

 

결혼식 예행 연습의 성과를 보여준 게 오전,

먹느니 마느니한 점심을 먹고-

 

제르니움: ...

제르니움: 주, 죽을 것... 같아...

 

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장막 뒤에 서있는 게 지금.

 

제르니움: (아, 어째서 이것들은 결혼식을 이렇게 크게 하는 건데!)

제르니움: (아니, 애초에 왜 나는 결혼을 하는 건데!!)

제르니움: (으아아아!!!)

제르니움: 으으...

 

머릿속의 정리되지 않은 말들이 나도 모르게 앓는 소리로 튀어나왔다.

 

제르니움: (이 장막 밖으로 나가면 진짜... 결혼이야...)

 

장막이 열리고 단상 위로 올라가면 정말 결혼식이 시작된다.

그렇게 생각하자 참을 수 없이 떨려왔다.

 

하일: -한다. 그러므로-

제르니움: (아, 하일 씨다.)

 

장막 밖으로 하일 씨의 목소리가 들렸다.

 

제르니움: (반말 쓰는 하일 씨 처음이야.)

 

나는 하일 씨를 생각해보았다.

 

제르니움: (아마, 이런 표정으로 있지 않을까.)

제르니움: (후후... 귀여워.)

 

신기하게도 하일 씨를 생각하자마자 마음이 편안히 가라앉았다.

 

제르니움: (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도-...)

시녀: 준비하세요.

제르니움: 아, 네.

 

시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.

 

하일: 소개한다.

 

장막 바깥 쪽에서 들려오는 하일 씨의 목소리에-

양 옆으로 장막이 열리며 실내의 조명 빛이 쏟아져내렸다.

 

하일: 내 신부, 제르니움.

 

하일 씨는 가장 높은 단상에서 나를 바라보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.

수백, 수천의 사람들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떨리지 않았다.

 

하일: 손을-

 

내 앞에 선 하일 씨가 작게 속삭였다.

 

하일: ... 생각보다 훨씬 더 예쁘네요.

 

환하게 웃는 하일 씨를 따라 단상 위로 올라갔다.

단상 위에서 내려다보는 홀은 평소와는 딴판이었다.

온갖 걸로 치장한 화려한 귀족들이 홀을 빽빽이 채우고 있었다.

 

제르니움: (으... 으...)

 

갑자기 몸이 떨려와, 주저앉지 않기 위해 하일 씨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.

 

하일: 괜찮아요. 잘하고 있어요.

제르니움: 네, 네에.

 

작게 속삭여주는 하일 씨의 목소리에 안정을 되찾았다.

나는 하일 씨의 에스코트를 받아 단상의 중앙으로 걸어왔다.

거기에는 펜이 티아라를 들고 서있었다.

 

제르니움: (배, 배운대로... 배운대로...!)

 

나는 펜의 앞에서 배운대로 인사를 하곤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.

 

펜: 묻는다.

펜: 그대 하일드리히와 제르니움, 서로를 반려로 맞겠는가.

 

펜의 질문과 동시에 나와 하일 씨의 시선이 얽혔다.

 

제르니움: (아... 이제 정말-)

제르니움: (돌아올 수 없어.)

하일: 네.

제르니움: 네.

 

나와 하일 씨는 동시에 대답했다.

펜이 그대로 티아라를 내 머리 위에 씌워주었다.

 

펜: 하일을 부탁한다.

 

펜은 내 귀에만 들리게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.

 

제르니움: 응.

제르니움: (-그래, 이제 정말 돌아올 수 없어.)

 

나는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.

하일 씨가 나를 바라보며 미소지었다.

 

제르니움: 하일 씨.

하일: 네?

제르니움: ... 나는 이제 돌아가지 않아도 좋아요.

하일: ...?

 

뜻모를 소리에 하일 씨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.

 

하일: ...

 

나는 그 표정에 한번 웃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.

 

제르니움: 사랑해요.

하일: ...!

제르니움: (나는 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-)

 

언젠가 혼자 했던 약속을 다시 떠올렸다.

 

하일: ... 사랑해요.

 

하일 씨가 내 손에 입맞추며 속삭였다.

 

하일: 당신을 행복하게 해드리겠습니다.

 

이제 그 약속은 두 사람의 약속이 되어-,

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었다.

 

베르뮤트: 아, 하일이 나보다 먼저 결혼이라니.

 

베르뮤트 씨가 앓는 소릴 했다.

 

라이카: 하일이 너보다 먼저 결혼할 거란 건 너 빼고 다 알고 있었어.

베르뮤트: 뭐어? 제일 결혼하고 싶은 건 나였는데...!!!

코르네: 결혼이 하고 싶으시다면 한명을 꾸준히 만나보시는 게...

베르뮤트: 어허!

 

베르뮤트 씨는 코르네 씨의 말이 말도 안된다는 듯, 단칼에 잘라버렸다.

 

베르뮤트: 세상은 넓고 여자는 많은데 어째서?

베르뮤트: 기왕 잘생기게 태어났는데 아쉽잖아, 그런 건?

라이카: 네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결혼을 못할 거란 거다.

베르뮤트: 라이카, 너무해.

펜: 라이카의 말이 옳다.

베르뮤트: 펜도 너무해.

펜: 너무한 건 너의 그 여성 편력이야. 적당히 하는 게 좋다.

펜: 품위를 지키라고.

베르뮤트: 아, 하지만 여자는 예쁘잖아? 아름다운 걸 그냥 놔두는 것도 죄라고.

펜: 입만 살았군.

슈밍: 동의.

코르네: 동의합니다.

제르니움: (저, 정신없어...)

 

서쪽, 남쪽, 북쪽에서 모인 마왕들이 각기 한마디씩 거들자 금방이라도 머리가 핑핑 돌 듯 정신이 없었다.

 

라이카: 그래서, 하일 너는 후회 없어?

하일: 후회요? 전혀요.

하일: 제게는 너무 과분한 분이니까요.

 

라이카 씨의 물음에 하일 씨가 즉답했다.

 

란: 우와, 닭살.

슈밍: 우와~ 닭살~.

 

란 씨와 슈밍이 똑같은 추임새를 넣었다.

 

아이작: 조용. 엄숙할 필요가 있습니다.

란: 아이작은 무서워.

슈밍: 응, 응. 무서워.

제르니움: (하하... 하하...)

제르니움: (... 진짜 뭐야, 이게...)

 

소란스러움에 나도 모르게 관자놀이를 짚었다.

 

베르뮤트: 앗, 어디 아픈 거야?

제르니움: 아, 아뇨. 그냥 조금 긴장해서-.

베르뮤트: 내가 긴장할 만큼 잘생기긴 했지만 긴장할 필요 없어.

 

베르뮤트 씨가 입꼬리를 올려 미소지어보였다.

 

제르니움: (아, 이런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있었단 말이지.)

 

나는 찬찬히 주변을 살펴보았다.

 

제르니움: (역시, 하일 씨가 최고야.)

 

나도 모르게 하일 씨의 팔에 얼굴을 기댔다.

 

베르뮤트: 오오오.

란: 오, 커플이다. 염장이다.

슈밍: 벌써부터?

라이카: 신혼은 좋네.

 

작은 스킨십에 호들갑을 떠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.

 

펜: 그만해. 네놈들은 예의범절이라는 게 없는 거냐.

베르뮤트: 왜, 좋잖아. 펜은 언제 결혼해?

펜: 상관마라.

 

펜이 딱잘라 대답했다.

 

베르뮤트: 있지, 그럼 제르니움. 너는 하일의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게 된 거야?

제르니움: 네?

 

갑작스러운 질문에 여덟명의 시선이 내게 꽂혔다.

나는 가만히 하일 씨를 바라보았다.

 

제르니움: 어디가 좋냐니-

제르니움: 그야, 사랑스럽잖아요. 전부 다.

라이카: 아, 아저씨는 이런 닭살스러운 장면 못 본다고.

 

내 말에 라이카 씨가 팔뚝을 벅벅 긁었다.

 

베르뮤트: 왜, 보기 좋은데.

코르네: 저, 저는 면역이 없습니다만...

 

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.

 

제르니움: (지... 진짜 정신없다.)

 

내가 다시 관자놀이를 짚자 하일 씨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.

 

하일: 괜찮아요? 아픈 거 아니에요?

제르니움: 아, 아니요. 그냥 진짜 조금-

펜: 가서 산책이라도 하고 와.

 

펜의 말에 하일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.

 

제르니움: (오, 웬일이야.)

 

펜에게 약간의 고마움을 느끼며 하일 씨와 함께 자리를 떴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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