백업/마왕신부

[하일 루트] 파트 9

졍님졍님 2019. 3. 12. 04:01

제르니움: 잠깐, 잠깐?!

제르니움: 그럼 나한테 잘 대해준 거 명령 때문이 아닌데 명령 때문이라고 거짓말 한 거예요?

하일: 그야, 처음에는 좀 명령 때문이긴 했는데...

제르니움: 했, 했는데?!!

하일: 그 다음부터는 명령 때문은 아니었거든요...

제르니움: 뭐어어?!!?

 

갑자기 황당함과 당혹감, 안도감과 무력감, 놀람과 기쁨이 뒤엉켜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몰려 들어왔다.

 

제르니움: 왜, 왜에!!!

하일: 말, 말씀 드렸잖아요-...

하일: 저 제르니움님이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존재니까, 제르니움님을 좋아한다는 걸 들키면...

하일: 제르니움님이 실망하실까봐.

제르니움: ... 내가 왜!!!!

하일: 윽.

 

나도 모르게 버럭,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.

 

제르니움: 내, 내가 아까 고백했을 때는요?!

하일: 그야-,

하일: 당연히 기뻤습니다만...

 

하일 씨가 고개를 떨구었다.

 

하일: 제르니움님에겐 저 같은 녀석이 어울리지 않는 걸 저도 아니까-

하일: 도, 동정이라고 생각해서... 일부러 매몰찬 말을...

제르니움: ...

하일: ...

제르니움: ...

하일: ...

하일: ... 저... 제르니움님...?

제르니움: 이...

제르니움: 이 바보가!!!!

 

나는 그대로 하일 씨의 팔뚝을 내리쳤다.

 

하일: 아! 아파요!

제르니움: 좀 더 아파도 돼요!

 

나는 한 번 더 하일 씨의 팔뚝을 내리쳤다.

 

제르니움: 진짜, 뭐야! 내가 얼마나...! 얼마나...!!

 

황당함 사이로 억울함이 섞여,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혔다.

 

하일: 우, 울어요?

제르니움: 몰라요!

 

나는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.

 

제르니움: (아, 하일 씨 앞에서 울고 싶지 않은데!)

 

하일: 제르니움님, 괜찮아요?

 

하일 씨가 걱정됐는지, 눈을 맞추려고 했다.

나는 고개를 돌린 채,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.

 

제르니움: 안 울어요!

하일: 그럼 나 좀 봐요.

제르니움: 안 봐.

하일: 왜요?

제르니움: 안 봐!

 

마음은 그게 아닌데, 괜한 심술이 솟아났다.

 

제르니움: (내가 그동안 얼마나 걱정했는데)

제르니움: (저 사람은 정말...!!)

 

하일 씨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-

 

제르니움: (좋아한다는 말을 못 믿는 건 너무하잖아...!)

하일: ... 제르니움님.

 

부드럽게 내 이름을 부르고, 하일 씨가 나를 품에 안아주었다.

따뜻하고 달콤한 냄새가 코 끝에 닿아 기분이 편안해졌다.

 

하일: 미안해요.

하일: 너무, 너무 자신이 없었어요.

하일: 제르니움님은 제게 너무 과분한 분이시거든요.

제르니움: ... 아니라니까요.

 

하일 씨의 품에 안기자 아까까지의 억울함은 눈 녹듯 사라지고, 이대로 조금 더 붙어있고 싶단 마음만 남아버렸다.

 

하일: 제르니움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지만 워낙 대단하신 분들이 많거든요, 마계에는.

하일: 그러다보니 제르니움님이 절 좋아한다고 말씀하시고는 나중에 가서 마음이 변하실까봐 두려웠어요.

제르니움: 왜 그런 걱정을 해요!

 

이번 건 정말 억울해서,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.

놀란 하일 씨가 잠시 품에서 나를 떼어놓았다.

 

하일: 죄송해요.

제르니움: ...

 

낮게 깔린 목소리에 나도 입을 다물었다.

 

제르니움: (하일 씨...)

제르니움: (... 좋아하는 사람에게 받은 고백조차 부정할 수 밖에 없는 삶이라는 건...)

 

나는 하일 씨의 삶이 무척이나 슬퍼졌다.

얼마나 많은 실수와, 그 때문에 생긴 많은 상처들이 있었을까.

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고백조차 <헛된 것일지도 모른다>고 생각하고,

<기대하면 안된다>라며 자신을 몰아세우는 게 얼마나 아픈 일일까.

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슬픔이었다.

 

제르니움: (나는 하일 씨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.)

제르니움: 하일 씨.

 

내 부름에, 하일 씨가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.

 

하일: 네.

제르니움: 절대로 그런 일은 없어요.

하일: ...

제르니움: 나는, 하일 씨가 좋아요.

제르니움: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일 씨가 좋아요.

 

나는 손을 뻗어 하일 씨의 얼굴을 가볍게 쓰다듬었다.

 

제르니움: 나를 바라보는 눈도, 다정한 목소리도, 상냥한 성격도-

제르니움: 가끔 실수하는 모습까지도, 하지만 뭐든 열심히 하는 그런 모습이-

하일: ...

제르니움: 응, 나는 그런 하일 씨가 좋아요.

제르니움: 그리고-

 

까치발을 들어, 하일 씨의 뺨에 짧게 입을 맞췄다.

 

제르니움: 그런 당신이 앞으로도 좋을 거예요.

하일: ...

하일: 저도-

하일: 견딜 수 없을 만큼 당신이 좋습니다.

하일: 나의 제르니움.

 

하일 씨의 손이 나를 끌어안고, 고백의 말이 벌어진 얕은 틈 사이를 채웠다.

 

하일: 아, 좋다.

 

기분 좋은 듯, 콧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하일 씨가 중얼거렸다.

 

제르니움: 나도요, 나도 좋아요.

하일: 정말이요?

 

나는 하일 씨를 끌어안은 채로, 고개만 위로 젖혔다.

기분 좋은 듯, 그러나 불안한 듯, 애처로운 하일 씨와 눈이 마주쳤다.

 

제르니움: 좀 더 자신감을 가져도 돼요.

제르니움: 당신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에요.

하일: 하하, 지금까지 쭉 자신감 없이 살았다가 갑자기 바꾸려니까 생각보다 힘드네요.

제르니움: 내가 도와줄게요.

하일: 응, 고마워요.

하일: 정말 고마워요.

 

허리를 안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.

 

하일: ... 제르니움님.

제르니움: 네?

 

약간 붉어진 얼굴의 하일 씨가 더듬거리며 입을 연다.

 

하일: 하, 항상...

제르니움: 항상?

하일: 이게 고민이었어요.

 

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과 주저하는 목소리에 나 또한 떨려왔다.

 

하일: 이제 어떻게 참아야 할지...

 

하일 씨는 한 손으로 내 턱을 잡고 살짝 젖혔다.

 

하일: ...

제르니움: ...

하일: ... 안 참아도 돼요?

 

나는 대답 대신 눈을 감았다.

입술 위로 따뜻하게 덮어오는 감촉이 부드럽고 애틋해서 이대로 계속, 며칠이고 계속 닿아있고 싶다고 바랐다.

 

하일: 제르니움.

 

입술이 떨어지고, 작은 한숨과 나를 부르는 소리가 섞여들렸다.

떨리는 마음으로 하일 씨를 바라보았다.

숨과 숨이 얽혀, 우리는 둘 다 약간 가쁘게 숨을 쉬고 있었다.

 

하일: 사랑해요.

제르니움: 나도요.

 

다시 한 번 입술이 겹쳐지고, 등 뒤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에 다시 눈을 감았다.

 

제르니움: 으...

제르니움: 눈 부셔-...

 

눈꺼풀을 따갑게 찔러오는 아침 햇빛 탓에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.

 

제르니움: 아-, 몇 시지?

제르니움: 얼마나 잔 거지?

 

주변을 둘러보다가 문득, 하일 씨가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.

 

제르니움: (먼저 나갔나.)

 

나는 몸을 일으켜 테라스 쪽으로 걸어나갔다.

연극 무대를 가리는 커튼만큼이나 커다란 벨벳 커튼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.

 

제르니움: 읏.

 

커튼을 양 옆으로 젖히자 갑자기 쏟아지는 빛에 눈이 멀어 나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.

 

하일: 아침부터 인상쓰면 안 돼요.

 

하일 씨였다.

 

하일: 늦게 일어났네요.

 

나는 쪼르르 달려가 하일 씨의 허리를 끌어안았다.

 

제르니움: 왜 안 깨웠어요?

하일: 너무 곤히 주무셔서요.

하일: 피곤했어요?

제르니움: 응.

 

나는 하일 씨의 품에 머리를 비비작거리며 입을 열었다.

 

제르니움: 나 좀만 더 자면 안 돼요?

하일: 으음, 안 돼요.

하일: 오늘 할 일 많단 말이에요.

제르니움: 싫어, 한 시간만 더 잘게요.

하일: 으음-.

 

곤란하다는 듯한 목소리가 귀여웠다.

 

하일: 그래도 안 돼요.

 

나는 하일 씨의 품에서 몸을 떼고 입을 열었다.

 

제르니움: 하일 씨, 어쩐지 갑자기 엄청 엄해진 느낌이에요.

하일: 하하, 그야 어쩔 수 없는 걸요.

 

하일 씨는 얼굴에 붙어있는 내 머리칼을 정리해주고 입을 열었다.

 

하일: 일단 식사부터 할까요?

제르니움: 네.

하일: 씻고 옷 갈아 입고 계세요.

제르니움: 네.

 

웃으며 대답하는 내게 하일 씨도 웃음으로 화답해주었다.

준비를 마친 후, 문 밖으로 나가자

 

하일: 모시러 왔습니다.

 

하일 씨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었다.

 

제르니움: 어디 다녀왔어요?

하일: 일하고 왔어요.

제르니움: 바쁘네요, 아침부터.

하일: 펜님에 비하면 별 거 아니에요.

 

그렇게 말하고 하일 씨는 옷을 갈아입은 나를 바라보았다.

 

하일: 예쁘네요, 정말로.

제르니움: 진짜?

하일: 네. 드레스 정말 잘 어울리는 거, 알고 계세요?

제르니움: 정말요? 나 사실은 이런 옷은 안 입어봐서...

제르니움: 그래서 안 어울릴까봐 매번 고민하는데.

하일: 그거, 알고 있어요.

제르니움: ... 어, 어떻게?

하일: 제르니움님, 드레스 입고 나면 항상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는 거 알아요?

제르니움: 내, 내, 내가요?

제르니움: (모, 몰랐어...! 티날 줄이야...!)

 

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올랐다.

 

하일: 그게 얼마나 귀여운지 모를걸요.

제르니움: ... 네, 네에!?

하일: 하하, 귀여워.

 

하일 씨가 가볍게 내 볼에 입을 맞추었다.

 

제르니움: ... 하, 하일 씨.

하일: 네?

제르니움: 어쩐지 스킨십이 편해졌네요.

하일: 아, 그거 제 대산데.

 

하일 씨는 장난스럽게 웃고 말했다.

 

하일: 참지 않아도 괜찮다면서요.

하일: 사실은 팔목도-

 

하일 씨의 손이 부드럽게 팔목을 훑었다.

 

하일: 허리도-

 

그리고 허리를 스치고 무릎을 굽혔다.

 

하일: 이렇게 한줌에 들어오는 발목도-

제르니움: ...!!

 

하일 씨의 손이 발목을 쓸어올렸다.

명백한 의도가 있는, 조금 젖은 듯한 느낌의 손짓에 얼굴이 달아올랐다.

 

하일: 전부-

 

하일 씨가 몸을 일으켰다.

 

하일: 좋아해요.

제르니움: ...!

 

가벼운 입맞춤 소리가 복도에 울렸다.

 

하일: 가실까요?

제르니움: 으, 으응...

 

나는 달아오른 얼굴로 하일 씨와 팔짱을 끼고 걸었다.

 

제르니움: 뭐, 뭐라고요?!

 

하일 씨가 조금만 빠르게 말했더라면 아마 방금까지 내 입 안에 있던 티를 그대로 뿜었을지도 몰랐다.

하일 씨의 발언은 그마만큼이나 황당한 일이었다.

 

하일: 결혼식이 앞당겨졌다고요.

 

하일 씨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애초에 언제 하는 건지 들은 적도 없는 결혼식이 앞당겨졌다는 소식이었다.

 

제르니움: 아, 아니... 아니, 왜!?

제르니움: 아니지, 그것보다 애초에 결혼식이 언제인지도 말 안 해줬잖아요!

하일: 아, 그랬었나요?

 

하일 씨가 고개를 갸웃했다.

 

제르니움: 그랬어요!

하일: 제가 빠뜨렸나봐요. 죄송해요.

제르니움: 아...

 

바로 시무룩해져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짠해졌다.

 

제르니움: 괜찮아요. 어차피 결혼식이 당겨졌으면 이전 날짜는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.

제르니움: 그래서 언제로 당겨졌는데요?

하일: 이주 뒤요.

제르니움: 뭐요?!!?!

 

이번엔 정말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버렸다.

 

제르니움: 이, 이, 이, 이, 이, 이주 뒤!?

하일: 네... 네에... 이, 이주 뒤요.

 

놀란 내 모습에 하일 씨가 잔뜩 몸을 움츠렸다.

 

제르니움: 아니, 아니 너무 빠르잖아요!

 

급작스러운 결혼식 날짜에 나도 모르게 버럭,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.

 

제르니움: 그렇게 빨리 해도 하일 씨는 괜찮아요?

하일: 어, 어차피 결혼식을 당겨야할 것 같아서 그냥 겨, 결혼 발표회를 취소하고-

하일: 그, 그 날 결혼식을 하기로... 겨, 결정했거든요.

제르니움: 왜 그렇게 빨리 하는데요!!!

제르니움: 그러니까 누구 마음대로!!

하일: 힉...!

제르니움: ...

하일: ...

제르니움: ...

하일: ...

제르니움: (너, 너무 지나쳤어.)

 

지나치게 화를 냈음을 인정하고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.

 

제르니움: 죄- 죄송합니다.

하일: 아니요, 저도 죄송합니다.

 

어색한 사과가 탁자 위를 메꿨다.

 

제르니움: 갑자기 결혼식은 왜 당겨서 하는 거예요?

하일: 아, 그게-

 

하일 씨는 대답을 피하는 듯 했다.

 

제르니움: 말해줘요.

하일: 음, 저번에 우리 성에 침입한 반인간 단체 녀석들 있었잖아요.

제르니움: 아.

 

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감싸쥐었다.

내 행동에 하일 씨의 표정이 금세 애절하게 바뀌어버렸다.

 

제르니움: ... 아, 이건 그냥- 가, 가려워서 그래요!

 

나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목께를 긁어보였다.

 

제르니움: 아, 아무튼 그래서요?

하일: 음.

하일: 많지는 않지만 마계에는 그런 식으로 인간을 반대하는 세력들이 몇몇 존재해요.

제르니움: 아, 저번에 들었어요.

 

역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얼핏 들었던 내용이었다.

 

하일: 마계에서도 그런 녀석들은 쓰레기라 그런 사상을 밝히는 녀석들은 별로 없어요.

하일: 문제는 그런 사상을 가진 몇몇 녀석들이 단체를 만들고 행동한다는 점이에요.

하일: 저번 사건을 일으킨 단체는 ‘카르고’라고, 인간을 학살하고 순수 마족이 아닌 마족을 경멸하는 고약한 녀석들이죠.

제르니움: (인종차별주의 테러리스트... 같은 건가?)

하일: 제르니움님이 인간이시다 보니까, 마왕과 인간의 결합은 말도 안된다며 들고 일어나는 거예요, 그 녀석들.

제르니움: ...

 

다시 목을 붙잡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아냈다.

 

하일: 그래서 아무래도 결혼식을 앞당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.

제르니움: ...

 

나도 모르게 시선을 떨구었다.

 

하일: ... 제르니움님.

 

하일 씨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 곁으로 걸어왔다.

내 어깨 위에, 하일 씨가 부드럽게 양손을 올렸다.

 

하일: 걱정하지 말아요.

 

나는 손을 들어, 내 어깨를 쓰다듬는 하일 씨의 손등을 매만졌다.

 

하일: 내가 당신을 지켜줄게요.

제르니움: ... 응.

 

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.

 

약간의 소란이 종료된 뒤, 우리는 식사를 재개했다.

 

제르니움: 하일 씨, 그런데요.

하일: 네?

제르니움: 결혼식 준비를 이주 만에 끝낼 수 있어요?

제르니움: 미리 하고 있었던 거예요?

하일: ...? 네?

 

하일 씨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, 고개를 갸웃했다.

 

제르니움: 내가 원래 살던 세계에서는 그대로 3개월에서 6개월은 걸렸었거든요.

하일: 정말요?

 

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 게, 신기한 듯 싶었다.

 

하일: 인간들은 오랫동안 준비하네요.

제르니움: 음-.

제르니움: 그리고 마왕의 결혼식이면 꽤 대단한 행사 아니에요?

하일: 꽤 정도가 아니라, 당연히 마계에서 제일 손꼽히는 행사 중에 하나예요.

제르니움: 근데 그걸 이주만에 준비해요?

하일: 으음.

하일: 인간은 어떻게 준비하는지 모르겠지만, 마족들은 마법을 쓸 수 있잖아요?

제르니움: 아-.

하일: 그래서 사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아요.

하일: 그리고 제르니움님이 모르시고 계셨지, 일은 언젠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어요. 마법의 도움으로요.

제르니움: 마법은 신기하네요.

제르니움: (아니, 신기하기보단 이건 진짜 사기 수준인데...)

 

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매일 일어나는 곳이라지만-

이럴 때면 정말 내가 있는 곳이 원래의 세계가 아니라는 걸 체감하곤 한다.

 

하일: 많이 신기해요?

제르니움: 네.

하일: 귀여워.

제르니움: 네, 네?

하일: 귀여워요, 제르니움님.

하일: 놀랄 때 얼굴- 엄청 귀여워서, 사실 자주 놀렸었어요.

제르니움: 모, 못됐어.

하일: 하하.

 

하일 씨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.

 

하일: 앞으로는 신기한 일도, 놀랄 일도, 재밌는 일도-

하일: 기쁜 일도 함께해요.

 

그렇게 말하고 웃는 얼굴이 너무 다정해서-

나도 따라 웃고 말았다.

 

펜이 도착한 건 점심 식사 후, 티타임을 막 시작하려던 때였다.

나와 하일 씨, 펜, 이렇게 셋은 티 하우스에 모였다.

 

펜: ...

 

펜은 찻잔을 차 받침 위에 내려놓았다.

 

펜: 정원이 아주 난장판이군.

하일: 아, 아하하하...

 

티 하우스 주변은 불탄 흔적으로 가득했다.

 

펜: 카르고 녀석들이 어젯밤 성에 무단침입했고 그 녀석들을 잡느라 내 정원이 이 꼴이 됐다는 거지?

하일: 네, 네에-.

제르니움: (완전 쑥대밭...)

 

나도 어제 방에 돌아온 뒤로는 정원을 살핀 적이 없어 이 정도로 쑥대밭이 되어있을 줄은 몰랐다.

 

펜: 몇 명이었지?

하일: 다섯명이었습니다.

펜: 다섯명 잡는데 내 정원을 이렇게 쑥대밭 만들 필요가 있었나?

하일: 저, 저도 모르게...

펜: 좋아. 처리는?

하일: 모두 깔끔하게-...

 

하일 씨는 그 이후의 말을 흐렸다.

 

펜: 좋아. 거기까지.

펜: 오늘과 내일은 정원 복구를 중심으로 결혼식 준비에 들어간다.

하일: 네.

펜: 내 퇴임식은 너희 결혼 뒤 결정될 거야.

제르니움: 퇴, 퇴임식?

 

놀란 나를 보고 펜이 한심하다는 듯, 혀를 차며 말했다.

 

펜: 차기 마왕 후보가 결혼하면 현 마왕은 마왕직을 물려주고 퇴임한다.

펜: 마계에 대한 역사를 배웠더라면 당연히 알텐데.

제르니움: ...

 

책망하는 듯한 눈초리에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.

 

펜: ... 혼내는 건 아니다.

 

의외로 다정한 목소리로, 펜이 다시 입을 열었다.

 

펜: 제르니움, 넌 앞으로 하일의 비가 될 사람이다.

펜: 기본 상식 쯤은 알아둬야 나중에 하일의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다.

 

하일 씨에게 ‘도움’이 될 수 있다는 부분에서 마음이 크게 움직였다.

 

제르니움: 응, 나 열심히 할게.

펜: 그럼 결혼식 준비는 착오없이 계획하도록.

 

말을 끝낸 펜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사라져버렸다.

 

제르니움: 있죠, 하일 씨.

하일: 네?

제르니움: 펜... 의외로 좋은 녀석일지도?

하일: 하하.

 

웃고 있는 하일 씨 뒤로, 이주 뒤로 다가온 결혼의 무게감이 느껴졌다.

 

제르니움: (나...)

제르니움: (잘할 수 있을까...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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